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참 좋으셨다 하였다. 태조에는 세상은 모든것이 그렇게 아름답고 보기 좋았던것 같다. 땅으로 기어다니라는 저주를 받기 전까지 뱀마저도... 우리가 알듯이 모든것은 있어야할 자리에 있어야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등산을 좋아할 때 산 정상에 오르려 하면 넓게 퍼져있는 산 등지에 많은 야생화가 널려있는 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 했다. 수녀님과 함께 봄이면 그 아름다움을 보기위하여 종종 그 산을 올랐고 마음을 사로잡는 광활한 야생화의 자태에 수녀님은 눈물을 흘리시곤 하였다. 그렇게 아름다움에 감탄할 줄 알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실 줄 아는 그 모습도 아름다움 이였다. 그렇다. 아름다움이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고 눈물울 흘릴수 있을때 흘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예쁘고 수수한 야생화도 채소받에 피면 한낱 잡초에 불과한것이다. 그렇게 모든것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아름다운 것이지 혼자만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위하여 잘못된 자리에 있으면 그 아름다움도 희석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개인을 떼어 놓고 봤을때 너무나 멋지고 신앙심도 강하지만 공동체에서 멀어지고 함께 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결코 좋으신 모습은 아닐것이다. 아마도 나도 그런 신앙인의 태도로 초기엔 지냈던 것같다. 주일을 지키기 보다 뭇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겉은 열심한 신자인데 유혹에 먼저 눈과 몸이 가는... 하느님께서는 필요한 사람은 길게 그런 모습으로 놔두지 않으시는 것 같다.
아마도 처움엔 업무때문에 방문했던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다미안 병원" 이라고 한센병 수용시설 겸 병원이 있었다 생각없이 방문하고 의무적 점검에 그 시설을 관리하는 수사님과 몇마디 이야기하고 잊고 지냈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연히 전에 만난 그 수사님께서 집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 식사를 하러 방문하셨다. 곧 당신들은 떠나고 영보 수녀회에서 대신 병원 운영을 맡게 되는데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고... 그때 그분과 여유있는 대화와 여러가지 애로 사항에 대하여 담소를 나누면서 내가 도울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돕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난 "다미안 병원" 운영위원이 되었고 자주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예전 문명 발전이 되기 전에는 성서에도 보듯이 문둥병 환자들은 하느님의 저주룰 받은 사람으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으로 인식하였다. 어렸을적 문 앞에서 행패 아닌 행패로 우리를 두렵게 했던 그 모습만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는 당연한 인식이였을 것이다.
어느 따스한 봄날, "다미안 병원"도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모든 분들이 방문을 열어놓고 방안공기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난 조심스렇게 그분들에게 다가가 커피 한 잔해도 되냐고 여쭈어봤다. 흔쾌히 방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며 초라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작은 차단스를 여시어 일회용 잔으로 정성스레 커피를 타 주셨다. 그것이 그분들과 첫 대면이였고 그날이 나의 신앙생활에 있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날 이기도 했다. 난 그때 알았다. 본인들도 왜 그 병에 걸렸는지 어떻게 감염되었는지 알길이 없다고 한다. 그냥 작은 상처 하나가 그들을 평생의 은둔자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기억엔 없다. 그러나 내가 방을 나올때 그분이 던진 말 한마디에 난 충격을 받았고 아직도 그말은 늘 가슴에 담고 산다. "함께 커피 마셔주어 고맙습니다" 아니 커피를 대접받은 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는데 도리어 커피를 함께 마셔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분 말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인사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그 후 난 적극적인 마음으로 "다미안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처움엔 일회용 전시 방문자로 알고 살갑게 대하지 않던 분들도 어느날 부터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모든분들의 방도 스스럼없이 드나들게 되었고 하나둘씩 자신들의 마음을 열게 되었다. 난 거리낌없이 그분들의 방에 들어가 커피를 찾아서 타 마시고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곤 한센병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도 하였다. 그런시기에 난 꾸리아 단장이 되었다.
마음이 보시기에 좋으셨는지 하는님께서 내게 날개를 달아주신 거였다. 꾸리아 단장인 난 레지오 지시 사항으로 "다미안 병원" 방문하여 청소하기, 주방일 도와주기 등등 많은 지시를 하였고 두려움과 꺼림직한 마움을 갖고 있는 신자들에게 적극적인 한센병에 대한 안전성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도 끝내 그 병원을 방문 못하는 신자도 있었지만 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협조하여 좋은 성과를 내었다. 난 한걸음 더 나아가 "다미안 병원" 에 레지오를 창설하여 내가 초대 단장이 되어 그분들도 남을 위하여 무언가 할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내가 초대 단장이 되어 그분들도 남을 위하여 무언가 할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그분들 께서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기를 꺼려한다는 것을 인식하여 스스로 나서는 봉사는 못하여도 많은 기도로 협조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본당 신자분들께서도 그분들과 가까워졌을때 성당에 행사가 있으면 참석케 했고, 본당 행사가 있으면 함께 미사에 참석하고 식사도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오랜 배척과 무지로 인한 두려움으로 스스로 사람을 기피하고 은둔 생활을 자처했던 분들에게 세상에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길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또한 본당 많은 분들에게 한센병이 결코 저주가 아닌 일종의 감염률이 낮은 전염병이라는 것도 인식시켜 주었다. 이것이 어찌 나의 힘만으로만 되었겠는가? 주님께서 인도하시어 많은 신자분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주님께서 내게 그런 달란트를 주셨던 것이다. (성인밑에 순교자가 있다)는 말처럼 이것이 또 어찌 나 혼자만으로 해결 되었겠는가! 집사람의 안보이는 노고가 내게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가끔 그분들을 식당에 초대하여 무료 식사를 대접하고 "다미안 병원"에 행사가 있으면 주방으로 달려가 음식 봉사를 해주었고 수고가 많다고 병원 관계자와 수녀님을 초대하여 무료 식사를 대접하고...
그땐 젊어서 몰랐다. 어른들이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어떻게 젊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그런데 나이가 들어보니 그 모습이 신앙생활에 있어 아름다운 밑거름이고 힘이라는 것을, 하느님은 일찍이 우리 부부를 깨우쳐 주셨다. 믿음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꾸르실료 교육을 가는데 다른 분들이 우리 부부에게 놀란것이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기도 빨랑카가 오느냐고.... 기억엔 우리 부부가 받은 기도 빨랑카가 너무 많아 모두가 놀랐던일이 생각난다. 모든 기도가 "다미안 병원"에 계시는 분들께서 밤낮없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분들의 기도의 힘이 우리 부부가 미국와 일찍 자리잡고 자식들 좋은 신랑 만나 잘 살고 내가 위험한 일을 하며 네비게이션 하나만 믿고 미 전역을 누빌때 아무 사고없이 여기까지 오게한것이 아닌가 한다. 사랑은 주는것이지만 받는것이 더 많다는것을 주님은 또 한번 일깨워 주신것이다.
그분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하면서 아픈 마음을 젊은 내가 어루만져 줄 수있어 행복했고 심오한 사랑을 일찍이 깨우치게 해 주신 주님이 너무도 고마웠다. 때론 돌아가신후 가족도 친지도 찾아오지 않고 재가되어 묻을곳 없어 산으로 가 자연으로 재를 뿌릴때 가슴도 아팠다. 저주아닌 저주로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짊어진 분들같아 보는 내가 죄스럽기도 하였다. 그분들과의 인연으로 일년에 두세번은 소록도를 방문하였고 "다미안 병원"에서 소록도로 이전되시는 분이 계시면 교통 때문에 내가 직접 모시고 소록도에 함께 하는일도 많았다. 그런일을 반복하면서 천사는 기쁨으로만 오는게 아니라 슬픔으로도 아픔으로도 다가와 그런 아품을 안고 사는게 얼마나 겸손을 깨우치게 하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것 같아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무지의 힘으로 문둥병이란 죄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속에서 살게 하면서 하느님은 우리가 알수없는 시험을 주시는 것 같다. 나는 자주 그분들에게서 천사의 모습을 보았다. 아품이 만들어낸 겸손과 배척 속에서 피어나는 신앙심, 신체의 불편함에서 오는 배려심, 그리고 작은 성의에 진심으로 돌려주는 사랑까지도.
그런 모습을 내게 심어준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사랑은 주느것 보다 받는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고 집사람 말처럼 명품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기보다는 자신을 주님께 명품으로 봉헌하는것이 더 아름다운 삶 이란것을 알게해 주신 하는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 오기 바로전에 그분들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 정성스레 손으로 만든 둔탁하고 커다란 묵주다. 지니고 다니기엔 너무 크고 빨래줄 같은것에 꿰어 만든 묵주지만 내겐 너무도 귀한 선물이다. 지금도 그 묵주를 벽에 걸어놓고 기도보다는그분들을 기억하며 추억한다. 지금은 연세가 많아 많은분들이 돌아가셨겠지만 보잘것 없는 사랑을 배풀고 자만심을 가지고있는 내게 겸손과 사랑을 알게해 주신 그분둘은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 살아있고 신앙의 모태가 되고있다. 주님께서는 그분들을 통하여 못생긴 묵주에 당신의 마음을 담아 내게 지금도 말씀하신다. [네가 이웃에게 배풀어 준 작은 사랑이 내게 베풀어 준 것이니라]
김종박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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