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편 우리들의 이야기

제 1 장 하고 싶은 이야기
제 2 장 생활속 신앙 이야기
Title톤지,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며...2026-03-14 20:46
Name Level 1

북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칼툼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만에 남부 수단의 수도 "주바" 국제공항에 내렸습니다.  시골 작은 마을 기차역 쯤으로 여겨지는 소박한 공항이였습니다.

8월이였으니, 우기라서 원래대로 라면 "와우" 라는 곳에서 트럭을 타고 비포장 도로를 철렁거리며 서너시간 가야 톤지에 도착합니다만 호사를 누려 주바에서 10인용 경비행기를 이용해 

시간반 가량 비행을 해서 톤지로 향했습니다. 8명을 태운 경비행기안에 나를 맡기고 하늘에 떠 있으니 바닥엔 초록의 세계가 펼져 집니다.  주님의 세계가 이리도 아름다운지

동화의 나라에 새를 타고 나르는 기분 이였습니다.  속직히 걱정도 많이 되었습니다.  칼툼에 사는 사람들은 남쪽을 위험하다고 절대로 가려하지 않으니까요..

그런곳에 이태석 신부님은 10여년의 세월을 아무것도 없는곳에서 엄청난 것들을 만들어 놓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2010.01.14)


경비행기의 기장은 운전도 해야하고 기름도 넣어야하고 승객의 짐도 실어줘야하고, 안내방송도 해야하고 완전 몸으로 뛰는  1인 다역의 핸섬한 파일럿 이였습니다.

톤지엔 공항도 없습니다.  맨 훍땅 넓은 평지에 덜덜 거리며 랜딩을 합니다.  기장이 얌전히 않아서 자기가 문을 열어줄때 까지 기다리다 한명씩 내려야 한다고 방송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행기가 기우뚱 하게되서 다친다고.  그의 말을 듣고 착한 승객이 되어 한사람씩 얌전히 내립니다.  비행기 소리가 나니 동네 사람들이

한무리 나와 구경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톤지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의 가옥 구조는 동그란 흙담에 지푸라기 고깔을 씌운 버섯 같은 집임니다.

건기에는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마는 지금은 풍요롭게도 우기라 푸르름이 더없이 아름답고 버섯집은 어여쁘게만 보였습니다.


비행기가 내린곳은 사람들이 사는 인근이였습니다.  차에 옮겨타고 마을 지납니다.  눈앞에 성당이 휙 지나갑니다.  길거리엔 총을 매고 삼엄하게 군인들이 즐비하게

서있습니다.  이곳은 딩카족이 많이 사는데 줄루족과 소 싸움으로 서로 훔쳐가다가 총격전까지 벌어져 인간이 소보다 못한 곳이랍니다.  키는 멀쓱하게 크고,

앞이빨 사이가 벌어진 여자가 최고의 미인이며 그런 여자와 결혼 하려면 무려 소를 20여마리 여자 아버지에게 바쳐야 한답니다.  소가 참 중요한 자원입니다.

저는 망고나무심기 프로젝트 방송을 위해 YTN 에서 업무차 참여한 것이였고, 톤즈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유실수를 심어줘서 과일을 먹으며 기아도 해결하고

팔아서 집안에 도움도 주려는 취지에서 이광희 디자이너와 독지가들이 돈을 모아 2009년 시작한 사업인데 톤즈에 입성한 안내자로 월드비전을 통해 들어오게

되었다 합니다.  망고나무 심기사업 (희망고)을 위해 월드비전의 캠프 막사에서 야생의 삶을 살며 칼툼의 삶도 한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척박한 곳인데

더한 악조건에 있다보니 칼툼은 그나마 천국이라 여겨졌습니다.  타임머신의 불시착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전에 두 부족간 치열한 싸움이 있어 마을이 뒤숭숭하니 만전에 유의하고 현금과 여권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며 총성이 날때는 땅바닥에 엎드려

총성이 멎을때 까지 있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며, 라디오는 채널 5와 9를 맞추고 지시를 들으라는 안전 교육을 듣다보니 참으로 오지에 착지했음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급한 상황이 생기면 비행기나 헬기를 준비시켜 대피시킬것을 약속해 주었고 유니품 입기를 권장해서 월드비전 조끼를 입고 업무에 임했습니다.

개별행동은 자제해야했고 늘 차로 이동하며 목적한 일인 주민에게 망고 묘목 나눠주기와 묘목심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주일이 되어 저와 방송팀은 성당에 가서

검은 톤즈 교우들 속에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제임스 신부님도 만났습니다.  제임스 신부님의 배려로 수요일 이태석 신부님 생가와 밴드부, 병원방문을 할수있게  주선을

해주셨습니다. 교우들에 들러싸여 망고나무 심기에 관해서도 충고의 말씀을 듣고 성당을 나왔습니다.


모든것이 계획대로 되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마는 수요일 갑자기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비행기가 출발을 할수없어 일도 마치기 전인데 짐을 싸서

비행기가 내리는곳에서 비행기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제임스 신부님과의 약속도 못지키게되어 현지인에게 전화연락을 부탁해 놓았지만 미심쩍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라도 전달하고 갈수있게 도와달라고 애원하여 성당에 당도하니 아이들과 신부님은 밴드 연습을 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전화연락은

못받았다 하시기에 잠시나마 눈도장이라도 찍고 떠날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황급히 비행기 내리는곳으로 달려갔더니 비행기는 올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잠시후 굉음을 내며 한마리 독수리처럼 경비행기가 내렸습니다.  그러더니 주바공항에 비가 많이와서 오늘 비행기가 출발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내리는 승객은 8명, 우리가 떠나야 숙소도 해결 되는데 이젠 우리의 잠자리가 문제였습니다.


저는 무작정 제임스 신부님께로 가서 병원이나, 밴드부 연습실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했으나 지금은 수녀님들이 관리하고 계시고 쉬운일은 

아닌것 같았으나 존리가 내려다 보고있으니 .. 하시며 어렵사리 숙소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루종일 우왕 좌왕하며 신경이 곤두서서 마음만 분잡했던 그러나

검은 교우들은 어디서 왔느냐 묻기는 커녕 그저 손을 잡으며 존리네 나라에서 온걸 안다며 그를 그리워했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비행기가

못뜨는 바람에 일행은 농구도 하고, 저는 이신부님이 지어놓은 시설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분이 연주하던 전자올겐, 기도시간에 존이라는 청년이 성가 연습을

하며 올겐을 칩니다. 병원도 문이 굳게 닫혀있고, 벤드부 아이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늘에서 이태석 신부님은 저의 아쉬움을

달래주셨습니다.  살아생전에도 두어달에 한번씩 칼툼에 오시면 몇안되는 교우들과 모닥불 피워놓고 양고기 구워먹으며, 신부님은 기타치고 우리는 뜨거운 여름밤 

사우나하듯 불가에 앉아 목청껏 노래를 불렀는데 돌아가신후 겨우 기적적으로 신부님을 느끼고만 갑니다.  


의복착용의 역사가 5년 정도, 아직도 옷을 입지않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채소도 없고, 과일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손도 발도 없는 나병환자 아주머니가 문간에서

구걸합니다. 저녁때가되면 아이들이 농구를하고 축구를 하며 너른 마당에 뽀얀 먼지를 일으킵니다. 잠시나마 그분께 깃들여 하룻밤 묵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른아침, 신부님 집 마당을 가득 매운 새벽 미사를 뒤로하고 차에 오르며 안녕을 고했습니다.  전쟁중인 이곳에서 주님의 손길로 천사들의 보호받으며 살아서

돌아온것이 기적이였고 톤지는 너무도 삭막했지만 검은 교우들로인해 따뜻했습니다. 오래된 기록을 소환해 소중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존리를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위대한 분과 함께 했음은 진정 은총이였고 아직도 수단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옵니다.


삶은 결국 살아있는 자들의 몫인가 봅니다.  살아생전 그분과 잠시나마 함께했던 추억으로, 그는 떠났지만 남은자들의 기억속에서 이렇게 영생을 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잊지않고 추억하는 한, 죽음이 궂이 이별만은 아니라고 위로해 봅니다.  슈크란 바바 



추신

2009년 12월 19일 이태석 신부님의 톤지의 아들, 토마스 타반과 존 마엔이 칼툼에 도착했습니다. 버섯 움막에서 살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아버지의 나라 한국으로 첫발을 내디딤에 기쁘고 흥분되기도 했을테고  한국이 어쩌면 그들에게 척박한 오지가 될수도 있겠지요. 잘 살아 달라는 기도와 함께 

공항에서 배웅을 했습니다.

2020년 1월  10년만에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 결혼소식, 톤지로 돌아가 지금은 존리처럼 슬기로운 의사행활을 하고 있다니 이렇듯 톤지에 

존리의 돈보스코시가 건설되어 발전하고 기적들이 펼쳐지고 있으니 은혜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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