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편 우리들의 이야기

제 1 장 하고 싶은 이야기
제 2 장 생활속 신앙 이야기
Title죄인의 회개를 기다리는 하느님2026-03-13 12:00
Name Level 1

12년전인 2013 년 초여름 운수사업을 하면서 고객님을 만나 돌보아주면서 하느님을 만난 느낍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해 6월 중순경 말기폐암 손님을 모시고 일터에서 시에틀 유덥 메디칼센터와 알리앙스 암센터로 왕복 모시고 다녔었는데 어느날 병원에서 일터로 가는길에 혼자 식당에 갈

용기가 나질않으니 한국식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할수있겠냐 하셔서 깔끔한 식당에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하며 "혹시 교회나 절에 다니시는지"를 여쭈었더니 어렸을적 부터

천주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신앙생활을 했었고 혼배성사후 본인은 미국 이민의사가 없었지만 부인의 친정식구가 미국에 살고 있고 몹시 가고싶어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미국에 오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민 초기엔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일만 열심히 하고 가정생활엔 무관심했고 딸과 아들은 완전 부인의 몫이였답니다. 

그러던중 아들이 3살부터 자폐증이 있음을 알게된후로 자주 싸우게되고 가정불화로 결국은 부인과 이혼하고 자녀들은 부인이 키우게 되었지요.  그후 너무나 마음이 허전하고

상했지만 그당시 살던 지역엔 한인이 거의 없는곳이여서 친구도 한인성당도 없어 미국성당의 신부님과 면담을 하기도 했는데 이혼한 사람은 성체를 영할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성체를 영하지 못할 바엔 성당에 다녀야할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성당에 안나간지 20년, 천주교 제도를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이혼후 혼자 시에틀로 이사와서 한인사회와는

완전히 단절하고 심지어 한국방송, 신문까지도 끊고 미국 직장에 다니면서 외로움과 괴로움을 잊기위해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했고 줄담배로 외로움울 달래고 제대로 영양섭취도

안해주어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다보니 폐암 말기로 식도에 전이가 되어 2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라는 설명을 듣자니 어떠한 위로의 말도 드릴수가 없었고 다만 나도

천주교 신자이고 로사라고 알려 드리고 신자를 만나게되어 반갑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찡그러져 있던 그분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반가운 음성으로 자기는 돈보스코 라며 악수를

청하시며 반가워 하셨습니다.  로사씨가 20년만에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며 이렇듯 힘든때 교우를 만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감격해 하시는 모습에 저도 많이

기뻤고 어떻게 도와 드리면 좋겠느냐 하니 지금까지 하느님이 자신을 버린줄 알았는데 교우 로사씨를 만나게 해주심에 하느님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분의 마지막 소원은 죽기전에 성체를 받아 모시는것인데 자신이 용서 받을수 있을지 모르겠다하여 우선 타코마 성당 신부님을 뵙도록 주선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번째 소원은 죽은후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듣고 어디서부터 도와 드려야할지 막막했었습니다.  병원에서 암치료 스케줄이 나오면 다시 연락하기로하고

헤어졌는데 일주일후 7월 4일 저녁 늦게 전화를 하셔서는 목이 너무 아파 아무것도 삼킬수 없어 3일간 못먹었다하여 주스를 사들고 공장 사무실에가보니 응급상황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창백하고 체중도 급격히 줄어드셨고 마치 아프리카 기아 아동같아 보이는게 위태로워 제차로 종합병원 응급실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이날부터 매일 병원을 방문하며 가족대신 보호자 역활을 하면서 기도드리며 대화하며 계속 화해성사와 병자성사를 권하고 신부님 면담을 주선했으나 아주 부정적이고 

거부감이 강했습니다.  자신의 죄가 용서 받을수 있을지 두렵고, 한편으론 당신이 10년간 많은돈을 투자해 정성들여 키워낸 공장을 인수해줄 사람을 찾는게 우선이라는 걱정으로

저의 권유를 거부하시기에 자비하신 하느님은 그렇게 째째하신분이 아니셔서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전적으로 애원하시면 필요하신것 다알고 계시기에 해결해 주실거라고

안심시켜드리고 꾸준히 달래 보았으나 수락을 안하셔서 역부족인것 같아 레지오 쁘레시디움 단장님의 지원을 받아 기도해 드리며 성사권면을 했습니다.


마침내 형제님을 만난지 한달만에 수락하셔서 마음이 변하기전에 얼른 추진코자 당시 주임신부님은 휴가중이셔서 수녀님께 연락해 손님 신부님과 연결이 되어 다음날

신부님을 모시고 병원에서 화해성사를 해주시고 면담을 통하여 이혼에 대한 조당도 풀어주셨습니다.  이 형제님은 이혼후 그날까지 재혼을 안하셨기에 가능했다는 설명과

함께 병자성사와 강복을 주시고 20년 만에 처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형제님은 죄의식에서 해방되었다는 밝은 표정, 기쁨에 넘친 감사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해 보였고 병이 다 나아진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것을 보며 저 또한 하느님의 현존과 역사하심을 체험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죄인의 회개를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많은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돈보스코 형제님은 생후 세번째로 정말 기쁜날이였다며

하느님과 신부님께 감사드리며 마침 성사를 해주신 신부님이 캄보디아 파견 선교사제셨는데 거액의 감사헌금을 선뜻 내시는것을 보면서 복음서에 나오는 세리 자케오 이야기가

떠올라 하는님께서 많이 기뻐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이후 양로원으로 옮겨지고 3주쯤후 하느님 품으로 가셨는데 이 3주간 저는 많은 갈등을 겪는 힘든 기간

이였습니다. 임종준비를 위해 저를 대리인으로 부탁하셔서 겟세마니 장지 구입과 장의사를 연결해서 장례식때 필요한 계약서 작성을 도와드렸고, 연락이 끊긴 두 자녀들을

위한 유언장을 변호사와 연결해 작성해 드렸는데 이 일들을 추진하는동안 통증이 심해져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고 불안해 하면서 결정한 내용을 번복하고, 대리인으로 모든것을

맡기겠다고 한후 잠시후엔 못믿겠다고 하면서 ...  대리인으로서의 부담감으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 황당한 경우를 접하다 보니 돈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직계가족도

아닌데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도 내놓으라니 형제님에대한 보살핌을 포기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처음 만났을때 완전히 저에게 의존하던 모습이 선해서 끝까지 도와들릴수 있도록 인내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임종준비를 해 드렸습니다.  이렇게 준비가

마무리 되어 가던중 한국에 사는 형제님의 남동생과 연락이 되어 상황설명을 했더니 그 동생분이 미국에 사는 돈보스코 형제님의 처남과 치과대학 동창이라 동창회를 통해

수소문해서 딸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아버지의 위독함을 알렸다는 연락을 받았지요.  안도의 숨이 쉬어졌습니다.  이 또한 하느님이 계획하신대로 이끌어 주신것이라

믿게되니 경이로웠습니다.


버지니아에 살고있는 딸이 왔다해서 이틀간 휴식을 취한후 장의사 계약서를 딸에게 전해주러 양로원으로 갔더니 그새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져 그방에 들어선 순간

형제님의 숨쉬는 모습이 심상치않아 주님의 지혜로 주임 신부님께 얼른 알려드리고, 마침 주일학교 학생들이 캠핑하는곳으로 출발직전에 연결이 되어 병자성사와 강복을

받으셨습니다. 그로부터 20분후 임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경이로운 하느님이신가를 체험했습니다. 그렇게도 하느님 품안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고 싶어하시던

돈보스코의 갈망과 소원을 들어주신 자비하신 하는님께 감사와 찬미가 절로 나왔습니다.  또한 나를 이일에 개입하도록 중개자로 이끌어 주셔서 한 영혼을 구원하도록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돈보스코 형제님의 장례미사와 장지 하관식에 자녀들과 전처도 참석하셨고 사촌누이 수녀님께서도 멀리 한국에서 오셔서 참석해 외롭지 않게 하느님께 보내드리게 되어

그동안 나의 힘들었던 마음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하느님의 빈틈없는 계획으로 죄인 하나를 회개 시키기 위해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  이 체험은 지금까지 나를 굳건히 지켜주는 커다란 힘이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멘


최숙현 로사

#힘
Comment
Captcha Code
(Enter the auto register prevention 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