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 아래의 게시판을 이용해서 내용을 작성 한다.

제 1 편 신앙공동체 태동

제 1 장 초기 신앙 공동체

Title제 1 장 초기 신앙 공동체 - Draft2026-02-22 12:38
Name Level 10

1 초기 신앙 공동체


가족의 만남에서 공동체의 뿌리까지


1. 한국말 고해성사의 염원과 만남 (1976 9 ~ 1979 6)


타코마 한인 가톨릭 공동체의 역사는 1976 9, 김규동(바드리시오), 황의경(마태오), 박만규 가족이 타코마 포틀랜드 애비뉴 소재 세인트 피터 성당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 효시를 이룹니다. 이들은 각자 다른 미국 성당에 다니고 있었으나, 김규동 씨의 수소문과 권유로 한곳에 모이게 되었으며, 이는 공동체 형성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 초창기의 어려움: 당시 교우들은 영어 미사에 참여했으나, 강론 이해와 고해성사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김규동 씨가 손가락 개수로 십계명의 계명을 표시하며 고해를 했던 일화는 당시의 절실함을 보여줍니다.
  • 한국어 미사와의 조우: 1977 1, 교우들은 시애틀 세인트 에드워드 성당을 찾아 차미도(Richard Parle) 신부 집전하는 한국어 미사에 처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영세자와 공동체의 성장: 1977 4, 박만규 씨가 워싱턴주 최초의 한인 영세자가 되었으며, 1978 최영수 신부의 일시 체류를 계기로 교우 수는 20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2. 차​미도 신부의 헌신과 본당의 기틀 마련 (1979 7 ~ 1983 7) 

1979 7 셋째 , 차미도 신부가 주일 오후마다 타코마로 내려와 미사를 집전하면서 드디어 타코마 공동체만의 한인 미사 시작되었습니다.

  • 차미도 신부의 사목 열정: 신부는 시애틀 대규모 성당 사목과 여러 단체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시애틀과 타코마의 한인 공동체를 위해 '1 5'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981 6월에는 스스로 한인 전담 신부를 자청하여 오직 한인 사목에만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 조직의 체계화: * 사목회 구성: 초대 사목회장 김규동, 2 황의경, 초대 총무 김광윤 등이 봉사하며 공동체의 살림을 맡았습니다.
    • 주보와 안내판: 1981 8 1 주보가 발행되었으며(당시 손으로 직접 쓰거나 오려 붙인 형태), 같은 10월에는 세인트 피터 성당 앞에 최초의 우리말 성당 안내판 세우는 감격을 맞이했습니다.
    • 구역제와 야외 미사: 1981 11 타코마 지역을 4 구역으로 나누었으며, 1982 7월에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야외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 영적 성장의 열매: 신부의 헌신적인 사목 결과, 1982 부활절에는 18명이 영세를 받았고, 1983 그가 이임할 당시 교우 수는 100가구에 육박하며 공동체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3. 초기 신앙 공동체의 유산: 땀과 정성으로 일군 4반세기


오늘날 1,000 명의 신자가 모이는 대성당으로 발전한 밑거름은 바로 시기 교우들과 사제들의 헌신이었습니다.

  • 실천하는 신앙: 차미도 신부는 매년 자신의 은행 구좌를 '0'으로 만들 정도로 어려운 교우들을 도왔으며, 교우들은 미사 함께 식사를 나누며 끈끈한 ' 공동체' 정을 나누었습니다.
  • 역사의 보존: 모눈종이에 정성껏 주보와 주소록, 누렇게 변색된 초기 명단들은 타코마 한인 천주교회의 소중한 뿌리이자 미래 발전을 위한 밑거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Comment
Captcha Code
(Enter the auto register prevention code)